In the early 20th century, African-American baseball players were not welcome to play in Major League Baseball (MLB).
20세기 초에, 미국의 흑인 야구선수들이 메이저 리그 야구(MLB)에서 경기하는 것은 환영받지 못했다.
On April 15, 1947, however, Jackie Robinson broke the baseball color barrier by joining the Brooklyn Dodgers.
하지만 1947년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팀에 입단함으로써 야구의 인종 장벽은 깨졌다.
Robinson was a brilliantly talented athlete.
로빈슨은 뛰어난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In his first year in the major leagues, he hit 12 home runs and helped the Dodgers win the National League Championship.
메이저 리그 첫해에, 그는 12개의 홈런을 쳤고 내셔널 리그 챔피언쉽에서 다저스팀이 우승하도록 도왔다.
In 1949, he was named the National League’s Most Valuable Player (MVP).
1949년에, 그는 내셔널 리그의 최우수 선수(MVP)에 지명되었다.
He also led his team to their first World Series victory in 1955.
그는 또한 1955년에 그의 팀을 첫 번째 월드 시리즈 승리로 이끌었다.
His popularity even inspired the song “Did You See Jackie Robinson Hit That Ball?”.
그의 인기는 심지어 ‘재키 로빈슨이 그 공을 치는 것을 봤나요?’라는 노래에 영감을 주었다.
Although Robinson was a great player, some of his teammates didn’t want to play with him.
로빈슨이 뛰어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팀 동료들 중 일부는 그와 함께 뛰고 싶어 하지 않았다.
He was often insulted and received hate mail and death threats—simply because he was African American.
그는 종종 모욕을 당했고 혐오 메일과 죽음의 위협을 받았는데, 그저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However, he never got angry or fought back.
그러나, 그는 절대 화내거나 반격하지 않았다.
His behavior impressed whites as well as blacks and influenced the nonviolent Civil Rights Movement.
그의 행동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비폭력 미국 흑인 평등권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After he retired in 1957, he tried to fight for the rights of African Americans.
1957년에 은퇴한 이후로, 그는 흑인 인권을 위해 싸우려고 애썼다.
On the 50th anniversary of his Major League debut, MLB retired his number, 42, and announced that no other player could wear it except on April 15, which is Jackie Robinson Day.
그의 메이저 리그 입단 50주년을 맞아, MLB는 그의 등 번호인 42번을 영구결번으로 하고, 재키 로빈슨 날인 4월 15일 이외에 어떤 선수도 그 숫자를 착용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