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any cultures, there have been superstitious fears about witchcraft.
많은 문화권에서 마법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가 존재해왔다.
People thought witches could inflict harm and death by causing natural disasters and illnesses with Satan’s help.
사람들은 마녀들이 사탄의 도움을 받아 자연 재해나 병을 초래함으로써 해로운 일이나 죽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In medieval Europe, this fear materialized in the form of the “witch-hunt,” resulting in tens of thousands of executions.
중세 유럽에서는 이러한 공포가 ‘마녀사냥’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고 그 결과 수만 명의 처형을 초래했다.
The first witch trials in Europe took place in the 13th century, and at the end of the Middle Ages, the fear became a craze.
유럽에서 최초의 마녀 재판은 13세기에 일어났으며, 중세 말기에는 그 공포가 열풍이 되어버렸다.
As the notion that all magic involved a pact with the Devil spread, legal sanctions against witchcraft grew harsher.
모든 마술이 악마와의 계약과 관련이 있다는 관념이 퍼져감에 따라, 마법에 대한 법률적인 제재는 더욱 가혹해져 갔다.
In 1486, the publication of the Malleus Maleficarum the hammer of witches, a guide for identifying and prosecuting witches, inflamed the manic nature of the witch-hunts.
1486년, 마녀를 식별하고 기소하는 것에 대한 안내서인 <마녀의 망치>의 출판은 마녀 사냥의 광적인 본성을 자극했다.
Numerous innocent people were tortured and killed during the “witch craze” between 1450 and 1700.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1450년에서 1700년 사이의 ‘마녀 열풍’ 기간 동안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People accused of witchcraft were often minorities, the poor, the homeless, and those with unconventional lifestyles.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보통 소수 민족,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들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Overall, most of the victims were women, in part because they were considered weaker than men and more susceptible to the temptations of the devil.
대체로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들이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남자보다 약하고 악령의 유혹에 더 빠지기 쉬운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How did this craze happen?
어떻게 이런 열풍이 일어났을까?
There have been a variety of theories explaining its cause, and they show that there were many changes and events that facilitated witch-hunts at that time.
그것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해 왔으며, 그 이론들은 당시에 마녀사냥을 조장했던 많은 변화와 사건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First, some theories have pointed out that legal changes allowed for the outbreak of witch trials.
첫째로, 일부 이론들은 법적인 변화가 마녀 재판의 발발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The Inquisition, which was enacted by the papacy, made it legal to torture and execute people who challenged Christian doctrine.
로마 교황에 의해 법제화된 종교 재판은 기독교의 교리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것을 합법화시켰다.
Through the use of leading questions and a variety of coercive measures, the accused would almost inevitably admit to some form of devilry.
유도 심문의 사용과 다양한 강압적 수단을 통해, 용의자는 어떤 형태의 악마론을 불가피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Another assumption is that the Black Death that reoccurred across Europe, mysteriously killing thousands of people in its path, influenced this socially turbulent period.
또 하나의 가정은 유럽 전역에 걸쳐 다시 발발하여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의문스럽게 죽게 만들었던 흑사병이 사회적으로 불안한 이 시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It made people panic, and neighbors and friends began informing on each other in an attempt to appear innocent of witchcraft.
그것은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고, 마법에 대해 결백하게 보이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이웃과 친구들은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The conflict between religious ideologies also aided the witch-hunts.
종교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갈등 또한 마녀사냥을 촉진했다.
After the Reformation movement started in the 16th century, clerics vigorously sermonized on the danger of witchcraft among the people, and both Catholics and Protestants were burnt as witches in each other’s territories.
16세기에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 이후로 성직자들은 사람들에게 마법의 위험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교했으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모두 각각 상대방의 영역에서 마녀로 화형에 처해졌다.
The witch-hunts started to decline when Europe attained social stability following the end of the Thirty Years’ War in 1648.
1648년에 30년 전쟁이 종결된 이후, 유럽이 사회적인 안정을 이루게 됨에 따라 마녀사냥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Superstition was slowly replaced by rational thought as a means to explain society’s hardships in what would become the Age of Enlightenment.
한 사회의 역경을 설명하는 수단이었던 미신은 계몽의 시대가 되자 점차 이성적인 사고로 대체되었다.
Today, although most superstitions seem to have disappeared, we can’t say that there is no possibility of another witch-hunt as long as a fear of the unknown still remains in the form of social intolerance or discrimination.
오늘날 대부분의 미신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사회적인 편협함이나 차별의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는 한, 또 다른 마녀사냥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